채 떨구지 못한 단풍을 보면서,
겨울철 산속의 정경은 다른 세 계절보다 더 다양한 것 같다. 어떤 이는 나목(裸木)이라는 말로 점잖게 표현을 하기도 하고, 또 어떤 이는 앙상한 나뭇가지라는 표현도 한다. 그 앙상한 나뭇가지들이 어쩌면 그렇게 구도적으로나 기하학적으로 잘 자리를 잡고 있는지 나는 그게 신기하다.
또 하나 궁금한 게 있다. 수종(樹種)은 같은데 어느 나무는 아직도 단풍잎이 매달려 있고, 또 다른 나무는 말끔히 다 떨군 나무도 있다. 어떤 과학적인 이유가 있겠지만 그걸 알 수 없으니 아직 잎이 매달린 나무들에 대하여 나는 그냥 미완성 작품이라 명명(命名)했다.
미완성 교향곡도 있고, 미완성 조각도 있으며 작가들의 유고작도 있지만 후일 다른 이가 그걸 완성하려 했을 때는 그 작품의 생명을 잃게 되는 징크스가 있다. 남은 여백, 그 여백을 채우는 것은 그 작품을 감상하는 이들의 몫이니 그 얼마나 공평한가.
생각해 보면 우리의 삶 속에서도 어떤 여백이 필요하다. 가쁜 숨을 진정 시킬 수 있는 그 여백이 있음으로 해서 마음의 여유란 게 생성될 것이다.
말은 자신의 의사를 남에게 전달할 수 있는 최상의 도구이다. 86년경에 ‘풍운’이라는 한국 비디오를 봤다. 이순재씨가 대원군역을 맡은 연속극이다. 어느 장면에서는 말이 아니라 표정만으로도 그 의미가 전달된다는 것을 느꼈었다. 극중의 상대가 아니라 관람자인 내가 말이다.
외국인라면 전혀 이해할 수가 없었을 것이라는 생각에서 한국인의 정서가 바로 ‘이것이다’라고 결론을 하였었다. 결과적으로 우리민족은 말에 여백을 둘 줄 아는 민족인 셈이다. 언어의 절제가 바로 마음의 여유에서 오는 것이니 어찌 우리민족이 자랑스럽지 않겠는가? 1/5/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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