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生)과 사(死).
생(生)과 사(死).
녹음방초(綠陰芳草), 여름의 자연경관을 그렇게 부른다. ‘젊음의 계절’혹은 ‘정열의 계절’이라는 별칭(別稱)도 있다. 여름엔 외로움을 잘 타는 사람들도 그 증상이 많이 줄어 드는 경향이 있다. 자연이 주는 무언의 암시를 받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그래서 긍정적인 환경은 힐링(Healing)의 첫째 조건이기도 하다.
지인의 부탁으로 말기암 환자를 만났다. 64세(여), 7년 전 자궁암 수술을 받고 완치 되었는데 다시 재발하여 암이 유방과 폐에 전이 되었다고 한다. 병원에서는 더 이상 손을 쓸 수가 없다고 해서 퇴원한 상태였다.
환자는 마음이 편하다고 했다. 죽음이라는 게 먼저 가고 나중에 가는, 그 정도의 차이이지 누구나 다 경험해야 할 한 과정이라는 것이었다. 다행히 신앙 안에서 죽으니 하나님께서 자신을 받아주시리라 믿는다고 했다.
철학이나 종교적인 접근에서는 옳은 말이다. 그러나 한가지 놓치고 있는 것이 있다. 인간뿐만이 아니라 모든 생명체의 세포에는 조물주의 섭리가 심어져 있다. 최후의 순간까지 생을 유지하라는 프로그램이 들어 있다는 말이다.
아파서 죽겠다는 말도 있지만 너무 아플 땐 진짜로 죽는 수도 있다. 감당할 수 없는 통증에서는 뇌에서 세포에게 자살 명령신호를 내 보내기 때문이다. 그래서 군대의 의무실에는 모르핀이 항상 비치되어 있다. 전투 중 총상이나 사고를 당했을 때 통증에 의한 쇼크사를 방지하기 위한 것이다.
자연치료에서 가장 힘든 대상이 전직 의료종사자들이다. 자신의 지식이나 경험에 의하여 사물을 판단하고 결론하는 것은 인지상정(人之常情)이나 자연의 섭리를 이해하는 사람들이 흔치는 않다.
자연치료를 간단히 정의를 한다면, 몸 속에 약에 의한 간섭을 배제하여서 세포나 면역체가 제 기능을 찾을 수 있도록 해 주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약 외의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야 한다. 일광욕이나 운동, 섭생이 기본 요소가 된다.
암환자에게 제일 힘든 것이 식사를 하지 못하는 것이다. 먹으면 토해 버리는 고역 때문에 음식을 거부 하지만 토하더라도 먹어야 한다.
생에 대한 집착은 인간의 본능이다. 예수님도 십자가 사건을 미리 아시고, “내 아버지여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라는 기도를 올렸었다.
모차르트는 어느 백작의 의뢰로 레퀴엠(Requiem)을 작곡하다가 백작의 심부름꾼이 입고 오는 검은 망토가 죽음의 사자의 이미지가 되어서 곡을 완성하지 못하고 죽었다는 일화가 있다. 그의 나이 35세에 생을 마감한 것이다.
죽음에 대하여서는 너무 초연해서도 안되고 반대로 너무 두려워하는 것도 옳지 않다. 세상사 모든 것이 그러 하듯이 어떤 노력도 합리적이라야 만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
다행히 전직 간호사인 환자가 차도를 보이기 시작하여 이곳에서 두 시간 거리인 블루 마운틴에 있는 캐빈을 렌트하여 요양 생활을 시작 하였다. 환경을 바꿔 보라는 내 제안에 순응해 주는 답례로 이틀에 한번씩 찾아 가기로 하였다.
기적은 먼데에 있는 게 아니라 내 몸에서 매 순간마다 이루어진다는 것을 많은 사람들이 알았으면 하는 바램이 있다. 6/1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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