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중사영(杯中蛇影).
배중사영(杯中蛇影).
진(晉)나라 하남(河南)의 태수(太守)였던
악광(樂廣)이라는 사람이 어느 날 친구를 집에
초대(招待)해서 술상을 마주하고 담소를 나누었다.
그런데 친구는 상위에 놓인 술잔 안에
뱀의 그림자가 비추는 것을 느꼈지만
말은 하지 못하고 계속 술을 마시고는 곧장 집으로 돌아왔다.
집으로 돌아온 친구는 결국 병(病)까지 얻어
자리에 눕게 되었는데
그 소식을 들은 악광(樂廣)이 친구의 집에 찾아갔다.
친구로부터 ‘술잔 속에 뱀의 그림자(杯中蛇影)' 이야기를 듣고
곰곰이 생각해 보니 바로 술상을 차렸던 청사의 벽에 걸려있던
뿔로 만든 활에 그려놓은 뱀 문양이 술잔에 비춰진 것을 알았다.
그 후에 악광은 다시 똑같은 자리를 마련하고 친구를 불렀다.
술상에 앉아 술잔에 비친 뱀 그림자의 연유(緣由)를 들은 친구는
곧바로 병(病)도 낫고 의심(疑心)도 풀렸다고 한다.
미국에도 비슷한 이야기가 있다.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오. 헨리’의 ‘마지막 잎새(The Last Leaf)’이다.
뉴욕에 거주하던 여자 화가인 존시(Johnsy)는
당시 유행하던 폐렴으로 죽음을 눈앞에 두고 있었다.
의사는 이대로는 존시가 생존할 가능성은 거의 없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3층에 살고 있는 존시는 건너편 건물의 벽에 있는 담쟁이 덩굴 잎을 보면서
그 잎이 모두 떨어지면 자신도 죽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아래층에는 독일계의 노인 화가인 베어먼(Behrman)이 살고 있었다.
언젠가는 걸작을 그리겠다고 장담하면서도
오랫동안 어떠한 그림도 남기지 않았으며 술만 마시며 살았다.
존시가 담쟁이 넝쿨잎이 다 떨어지면 죽는다는 소문을 듣고
베어먼은 터무니없는 소리라고 일축했다.
그날 밤,
밤새 심한 비바람이 불었는데 아침에는 담쟁이 덩굴 잎이 한 장만 남았다.
그 다음날 밤에도 심한 비바람이 몰아쳤지만 한 장만 남은 잎이 담장에
그대로 남아있는 것을 본 존시는 기력을 되찾게 된다.
마지막 남은 그 잎은 베어먼이 담장에 붓으로 정교하게 그린 것이었다.
존시는 기적적으로 완쾌되었지만,
사다리를 타고 차가운 비바람을 맞으며 밤을 새워 벽에 잎을 그린
베어먼은 2일 만에 폐렴으로 죽고 만다.
이 사실을 안 존시의 룸메이트인 수(Sue)는 담벽에 그려진 마지막 잎새가
베어먼이 생전에 언젠가 그리겠다고 말했던 걸작(傑作)이라고 평가했다.
~ ~ ~
마음의 근심은 심중의 고통뿐만이 아니라 건강을 상하게 한다.
그걸 모르는 사람은 없지만 인간사가 그리 만만치가 않은 게 문제이다.
남들에게는 사소한 일이지만 나에겐 심각한 경우도 있고,
반대로 내에겐 사소한 일임에도 남들은 심각하게 생각하는 경우도 있다.
그게 각자의 가치관이나 생활철학이 상이(相異)한 탓이다.
사회규범은 누구나 다 동의하는 것은 아니지만
큰 테두리 안에서 보편성을 추구하며 살아 가는 룰(Rule)이다.
그럼에도 물리학에서 탄성피로(彈性疲勞)라는 게 있듯이
인간 정서에서도 사소한 일이지만 지속적으로 자극을 받게 되면
예민해져서 인내할 수 없는 지경에까지 치닫게 된다.
그럴 경우 상대에게 대범하라고 주문하기 보다는
그 자극을 걷어 내 주는 게 참된 배려이다.
고민을 해결하려고 상담사를 찾았으나 별 도움이 안되는 경우는
상담사가 판관(判官) 노릇을 한 탓이다.
상담사는 어느 사건의 옳고 그름을 따져 주는 게 아니라
의뢰자의 내면을 찾아 주는 게 정석이다.
평범하게 그냥 보편적인 삶이라면
그만큼 고민도 적을 것이라는 게 내 생각이다. 12/27/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