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모(歲暮)에 부쳐서,
설날에 어떤 염원을 빌거나 일년의 계획을 세우는 사람들도 있다. 나는 한번도 그런걸 해 본적이 없다. 그냥 진인사 대천명(盡人事 待天命)의 개념으로 살아간다. 좀 더 고상하게 표현을 한다면 그게 내 생활철학이다. 어느 경우든 최선을 다 했다면 그 결과에 대해서는 그대로 순응하는 편이다. 때문에 설날이라 해서 특별할 것도 없다.
그러나 세모(歲暮)엔 생각이 많다. 지난 일년을 되돌아 보기도 하고 옛날을 추억하기도 한다. 만족스러운 일들 보다는 아쉬웠던 일들이 더 많은 걸 보니 금년도 밑진 장사가 된 셈이다.
‘속아 사는 게 인생’이란다. 내일은 낫겠지, 내일은 낫겠지 하면서 살아 왔더니 그게 아니었다는 것이다. 모사재인(謀事在人) 성사재천(成事在天)이라는 말이 있다. 계획은 인간이 세우지만 그 성공은 하늘에 달렸다는 것이다. 뭔가를 해보지도 않고 하늘을 탓하지 말라는 의미에서 과거 이승만 박사가 자주 인용했었다.
우리 민속설화에 도깨비 방망이 이야기가 있다. 서양에도 그와 비슷한 알라딘의 램프가 있으니 동서양 모두 비슷한 염원이 있는 셈이다. 나도 그런 게 하나 있었으면 좋겠으나 도깨비 방망이는 착해야 얻을 수 있고, 알라딘 램프는 목숨을 담보로 하는 모험을 이겨내야 한다. 둘 다 켕기는 게 많아서 그것도 틀렸다.
옛날에는 도사(道師)들이 많았었지만 요즘은 자취를 감췄다. 공교육 덕분에 무엇을 더 많이 안다고 해서 신격화가 되지 않는 탓이다. 학문이 미망(迷妄)을 없애주니 그렇다. 제갈공명이 전쟁 중에 요술을 부려서 서풍(西風)을 불러 온 게 아니라 그가 기상관측(氣象觀測)을 할 줄 알았던 것이다.
정약전은 유배지 우이보에서 기상관측으로 어부들에게 출어(出漁) 날짜를 알려 주었었다. 멀쩡한 날 출어하지 말랬다고 욕을 하면서 출어 시켰던 선주가 풍랑으로 배 두 척 중에 하나만 돌아 온 것을 보고 믿기 시작했었다. 정약전은 자신이 점쟁이가 아니라 기상(氣象)을 보면 알 수 있는 것이라고 했으니 중국사람들 보다 조선사람들이 훨씬 정직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도깨비 방망이나 알라딘 램프를 얻기는 틀렸고, 도사 노릇도 힘들게 생겼으니 명년에는 그냥 삽 들고 흙을 파서 산 비탈이나 메우려고 한다. 땅을 파다가 금 덩어리가 나오면 그런 고민은 그 때 하련다. 이곳 체로키 카운티가 옛날 골드 러쉬의 본거지이었으니 전혀 가망이 없는 것도 아니다. ㅎㅎ
새해엔
여러분들의 가정에 행운이 깃들어서 소원성취의 해가 되시기를 빕니다.
고맙습니다. 2/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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